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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문화연구원 제4차 심포지엄 : 최고경영자가 갖춰야할 덕목과 행복론

KECI | 2016.01.31 19:56 | 조회 3746

▲한국경제문화연구원 제4차 심포지엄에서 '최고경영자가 갖춰야할 덕목과 행복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김유혁 박사


[문화저널21 최재원 기자] 한국경제문화연구원(KECI)이 주최하는 ‘CEO심포지엄 : 최고경영자가 갖춰야할 덕목과 행복론’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청계산 부근 심포지엄룸에서 진행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김유혁 박사가 ‘최고경영자가 갖춰야할 덕목과 행복론’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2부에서는 참가자들이 바비큐파티로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김유혁 박사의 강의 내용이다.

 

행복은 어떠한 조건으로 존재하고 어떠한 상태로 느껴지는 것일까? 행복은 절대적인 것인가, 상대적인 것인가, 그리고 행복은 주관적인 평가의 대상인가, 객관적인 평가의 대상인가?

행복의 개념을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값의 차이는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이 나만의 고유적이며 독점적인 소유개념으로 볼 떼에는 절대적일 수도 있고 동시에 주관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행복이 나만의 것이라고 믿는 고유의 주관적 개념이라면, 사회적 의미의 행복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것이 돼야할 것인가? 바꾸어 말해서 만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사회 건설은 어떻게 추구해가야 할 것인가?

 

CEO는 독립인자의 개념이 아니다

 

CEO라는 것은 독립인자의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CEO의 존재는 다중(多衆)을 상정(想定)하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존립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CEO의 행복관은 필연적으로 사회성을 띄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은 누구나 끝없이 추구하려는 가치임에 틀림이 없지만 착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차각 그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행복이 아니며 불행일 뿐이다. 

인생의 선용(善用) “ The Use of Life” 라는 책에서 보면 “행복은 물질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 happiness is not result of circumstance the condition of mind”라고 하였다. 참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서구의 어느 학자는 행복이 존재하는 상태를 하나의 수학공식처럼 풀고 있다. 즉 행복은 마이너스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풀러스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happiness)은 욕망(desire)분의 소유(possession)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H = P/D ).


욕망을 100으로 보았을 때 소유를 100까지 채울 수는 없다. 때문에 소유의 량은 언제나 욕망의 량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 행복은 1분의 -1 일뿐이다 (H = -1/1).


따라서 행복은 -1로 존재하기 때문에 성취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의 경우 인간에게 있어서 100% 의 행복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 때부터 기대가능성과 희망을 지닐 수 없게 될 것이며, 동시에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노력의 지속성을 잃게 될 것이다. 기대와 희망이 없는 인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 믿었던 100% 개념의 행복도 살아진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며 플러스1이 아니다

 

그럼으로 행복은 언제나 반달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느낌으로 즐겨야 한다는 비유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 개념의 반달을 아름답게 즐길 줄 모르게 되는 까닭은 100%의 행복을 무리해서라도 확보해야한다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한 욕심을 채우려 하다보면 1차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속여야하고(欺心:자기부정), 2처차적으로는 사람들을 속여야하며(欺人:신의부정), 3차적으로는 세상을 속여야 한다(欺世:정의부정). 그와 같은 3부정과 역행(逆行)의 결과는 자신이 스스로를 행복의 궈역 밖으로 몰아내는 망동(妄動)으로 들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망동을 합리화하려고 서둘다 보면, 첫째는 자기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둘째는 불신풍조에 휘말리게 되며, 셋째는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른바 연간 250조원이 넘는 사회적 갈등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자기모순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모순극복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람에 의하여 재기된 모순은 반드시 극복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문제는 사람만이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소한 3가지 요건을 바탕으로 하여 생존하게 된다.

 

인간최대의 금물은 欺心, 欺人, 欺世.

 

첫째는 인권이요, 둘째는 기회요, 셋째는 능력이다. 인권은 천부적(天賦的)이기 때문에 평등원리에 의하여 보장돼야하고, 기회는 제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균등원칙에 의해 주어져야하며, 능력은 사회적으로 적격배역(適格配役)이라는 배분적 차등대우에 따라서 정의(定義)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불만을 토로하고 불행을 호소하는 이유는 스스로 느껴야할 능력차이를 부정하고 모든 부면에서 수평적 평등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리(公理)와 사욕(私慾)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맹자애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생래적으로 지니는 양지(良知)와 터득해서 축적해가는 지성을 바탕으로 하여 공자가 말하는 혼연지기(渾然之氣)와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동시에 호흡하면서 이퇴계선생이 말하는 우주와 인간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천인합일론(天人合一論)을 몸으로 익혀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아름다움은 인권, 기회, 능력이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해와 달의 움직임과 4계절의 변화질서처럼 우리의 생활 리듬을 이어갈 수 있으면 된다. 주역 건괘(乾卦)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구절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귀띔 해주고 있다.


따라서 사회 각분야의 CEO의 경우일수록 우리들의 공동경헙 속에 함적되어 있는 정보가치를 독서(讀書)라는 수단을 통하여 발굴하고 다듬고 재정서(再整序)해 간다면 우리애겐 반드시 새로운 꿈터(夢場)이 열려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사회 창달도 여기에서 부터 대도(大道)가 열러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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