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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준 칼럼] ‘사피엔스사피엔스사피엔스’

KECI | 2019.12.06 08:21 | 조회 47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류가 육체적으로는 우성인 네안데르탈인(힘쎈, 독립적인, 보수, 기득권층)과 열성인 ‘사피엔스’(약하지만 협동적인, 개혁층)의 대립이 있었으며, 오히려 열성인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가 협동과 개혁정신으로 외부 환경(빙하기)을 함께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예측한다.

 

유발 하라리는 또한 생존한 사피엔스(현 기득권, 구세력, 노령층)마저도 이제는 점점 보수화되어 자기 독립적으로 변하였으며, 21세기 공업/디지털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종인 ‘사피엔스사피엔스’가 탄생하여 기존의 사피엔스 종(種)의 단점을 극복할 것이라 예언한다.

 

7포세대, N포세대라 불리는 ‘사피엔스사피엔스’는 현재 20~30대(육체적 나이가 아닌 정신적 나이)로 ‘사피엔스’에 비해 육체적으로는 다리 길이가 길고, 키가 크며, 독립성이 강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협력/협동심이 강한 종(種)의 특성을 갖고 있다. 

 

강한 독립성으로 혼밥을 좋아하고, 전통적인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공동구매, 공유경제, (해외)직구, 협동조합, P2P대출, 크라우드펀딩 등은 ‘사피엔스사피엔스’들만이 할 수 있는 협력경제행위(집단지성)이다. 

 

사회적으로는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등을 포기한 불쌍한 세대로 보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여행, 맛(음식), 커뮤니티, 건강(헬스,필라테스,요가) 등으로 그들만의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인 ‘사피엔스사피엔스’는 그러나 기존 사피엔스들과의 분쟁과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소 변형된 삶을 살아야 한다. 현실(돈) 앞에서 타협함으로써 주관적이며, 단기목표에 집중하는 삶을 산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져 일희일비하면서 작은 만족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약점을 갖고 있다.(사회 불만에 대한 인터넷 ‘댓글’이 대표적인 ‘사피엔스사피엔스’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사회에 대한 불만표출 방식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변증법적으로 ‘사피엔스’의 장점과 ‘사피엔스사피엔스’의 강점을 갖고 있는 새로운 종(種)의 탄생이다. 이가 바로 ‘사피엔스사피엔스사피엔스’다. 

 

이 새로운 종(種)은 프론티어 성향이 강하되 객관성이 매우 높은 인종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몰입하되 객관성을 잃지 않고, 옛 마술사가 수정구슬로 세상을 보듯 멀리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이들은 에드문트 후설이 얘기한 ‘에포케’(성급하게 자신이 다 안다고/자신의 텍스트가 맞다고 판단하는 것을 일시 보류하는 것)를 유지하는 인종이다. 세상 바라보기에 있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에 사사건건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으며, 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이러한 객관성은 자칫 사회에 무관심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소 엉뚱해 보이고, 철학적이되 상대에게 자신의 텍스트를 강요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어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손해를 보는 편이 낫다는 신념도 갖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이기성’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가 아닌 ‘이타성’을 바탕으로 하는 ‘新개인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새로운 일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유는 타인의 삶에 깊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들은 육체적 나이와 상관없이 ‘사피엔스’도 아니며, ‘사피엔스사피엔스’도 아닌 ‘사피엔스사피엔스사피엔스’다. 양쪽(사피엔스, 사피엔스사피엔스)의 얘기들을 다 들어주고 양쪽 모두와 동화할 수 있으니 당연히 양쪽 모두와 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상했겠지만 ‘사피엔스사피엔스사피엔스’라는 인종의 탄생은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자신의 텍스트만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고, 타인의 텍스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담론(談論,콘텍스팅)으로 발전적인 하이퍼텍스트(理論)을 만들게 된다면 지금 우리 모두가 ‘사피엔스사피엔스사피엔스’가 될 수 있다.  

 

박항준 세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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